Story 01 l 在月光映照下的阿尔卑斯山脚村庄

(赫尔曼·黑塞-不眠之夜)

알프스의 밤이 깊었습니다.

오래된 호텔 방, 나무로 된 창가엔 책상 하나가 놓여있고 그 위로 달빛이 쏟아져 내립니다. 창밖으론 눈 덮인 계곡 아래 헤르만 헤세가 생에 절반을 살았다는 작은 마을 몬타뇰라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여요. 아늑하게 모여있는 크고 작은 집들 아직 잠들지 못한 창문엔 노란 불빛이 걸려있고 달빛 아래 빨간 지붕이 녹아내린 눈 사이로 어슴푸레 보입니다.

밤에 불을 꺼놓고 침대에 한참 누워있어도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이어져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합니다. 헤르만 헤세도 그랬다고 해요. 유감스럽게도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고 고백했죠.

사람을 바꾸는 건 딱 세 가지라고 합니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헤세도 이 알프스 산자락 평화로운 몬타뇰라로 옮겨오면서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 온 첫 여름, 두 편의 소설을 써 내려갔고 그보다 더 많은 그림을 그렸대요. 루가노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앉아서 연필로 선을 그리고 붓에 물감을 묻혀 색을 칠하면서 오래도록 그를 잡아두었던 슬픔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 오솔길을 걷고 집 앞마당에 토마토를 키우고 낙엽을 태우면서 따스한 온기와 삶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 그는 다시 고독한 여행자가 되어 편지를 썼습니다.

'이제 나는 빈털터리에 대단치 않은 시인, 남로 하면서 다소 수상쩍기도 한 이방인이다.'

어두운 방에 홀로 앉아 낡은 타자기 위로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을 내려놓았을 그의 밤을 상상해 봅니다.

작은 책상 하나와 침대가 놓여있는 쓸쓸한 방에서 홀로 서성댔을 숱한 밤, 잠시 그가 살던 시간으로 떠나 그 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 줄게요.

잠 못 이루는 밤에_헤르만 헤세

늦은 밤, 침대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한다. 거리는 고요하고 정원의 나무 사이로 바람이 분다. 어디선가 개가 짖는다. 마차 지나가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온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바퀴 소리가 덜컹거리는 게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고 있음을 짐작게 한다.

머릿속으로 마차를 따라간다. 마차는 모퉁이를 돌더니 갑자기 빠르게 달리기 시작한다. 바퀴를 바쁘게 굴러 정적 속으로 사라진다. 뒤 이어 밤늦은 행인이 걸음을 재촉하는 소리가 들린다. 발걸음 소리가 텅 빈 거리에 유난히 크게 울려 퍼진다. 발소리가 멎고 문이 열렸다 닫히고 다시 정적이 흐른다.

잔잔한 바람 소리와 미세한 먼지 소리까지 크게 들려오는 시간이다. 몸은 피곤하였고 모든 감각이 곤두선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는다.

피로감에 눈과 생각이 흐릿해지고 피가 혈관을 따라 쉼 없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뜨거운 심장 소리가 머릿속까지 울려 지끈거리고 맥박은 일정하면서도 혼란스럽게 뛴다.

몸을 뒤척여 보고 일어났다 다시 누워도 소용없다. 혼자 힘으로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시간이다. 생각과 감정과 기억들에게 압도되고, 이야기 나눌 사람조차 없다.

타지에 누워있으면 오래전 떠나온 고향이 떠오른다. 어릴 적 살던 집과 앞마당, 잊고 있던 동네가 보인다. 그때 보았던 파란 하늘, 천진난만하게 뛰어놀던 숲과 시끄럽게 돌아다니던 방이며 계단도 선명하다.

집 앞엔 낯설게 늙어버린 부모님이 날 기다리고 서있다. 사랑이 가득 담겨있지만 약간은 걱정스러운 듯 서운한 얼굴이다. 손을 잡으려 뻗어보지만 잡히지 않는다. 묵직한 슬픔과 외로움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리고 떠오르는 또 다른 얼굴들, 모든 게 서툴던 시절 요령 없는 내 사랑은 거절당했다. 선의를 의심받아 힘든 나날을 보낸 적도 있다. 주어진 행운을 아집과 오만으로 놓쳐버렸고 누군가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으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못된 말이나 꼴사나운 몸짓으로 친구를 괴롭히기도 했다. 지금 눈앞에 그들이 나타나 바라보고 있다. 그들에게, 나 자신에게, 몹시도 부끄러워진다.

바쁘고 떠들썩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곯아떨어지던 날들이 있었다. 많이 보고 많이 말하고 많이 듣고 많이 웃었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낯설고 희미하다.

문득, 오늘처럼 아무도 없이 침묵 속에 지내온 지가 무척이나 오래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모든 게 정신없이 돌아가는 생활 속에서 영원으로 의식될 수 있는 시간은 놀랍도록 짧다.

감각과 이성은 뒤로 물러나고 기억과 양심의 거울 앞에 영원히 당당히 서는 시간. 외롭고 긴 여행에서 돌아온 순간 그 시간은 찾아오지만, 그마저도 잡념과 왜곡된 기억이 방해를 놓는다. 잠 못 이루는 밤은 그래서 가치 있다. 잠 못 이루는 밤이라야 우리의 영혼은 비로소 순수하게 놀라움과 공포, 심판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들어낸다.

우리가 낮에 느끼는 감정은 절대로 순수하지 않다. 오감이 강하게 끼어들고 이성이 판단의 목소리를 내며 미묘한 비교와 파괴적 농담이 흥분된 감정 사이에 섞여들기 때문이다.

영원은 멍하니 지켜볼 뿐이다. 몇 날 몇 달을 집착과 억압에 억눌려 지내다가 영원의 시간이 오면 잠 못 이루는 밤이 오면 굴레를 벗어던지고 마침내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

아무리 애써도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 때, 쉽게 흔들리지 않는 힘이 우리 안에 있고 세상엔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걸 말해주는 목소리를 때때로 듣는 것은 도움이 된다. 정직하고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한층 깊어진 눈빛으로 고난에 시간에서 벗어난다.

잠 못 이루는 밤을 괴로워해본 사람은 안다. 불면증은 내면에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다. 힘든 일을 많이 겪어본 사람은 지나칠 만큼 말과 행동을 삼가고 조심한다. 우리 몸과 생각을 지배하는 방범을 잠 못 이루는 밤에 배우는 것이다.

누군가를 배려하고 부드럽게 감싸 안아 주는 건 그것을 필요로 해본 사람이 가장 잘 할 수 있다. 정적 속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생각에 잠기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본 사람만이 따뜻한 시선과 사랑으로 속을 가늠하고 이해하고 관대해진다.

모든 사물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된다. 보잘것없는 삶에 충만함의 향수를 뿌려주는 경외심. 위대한 시와 예술을 가능케 하는 조건 경외심.

잠 못 이루는 밤 침대에 뜬눈으로 누워있으면 시간은 끔찍할 만큼 천천히, 조용히 흐르고 시계 종소리가 하나씩 더해 울릴 때마다 기분은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럴 때 평소 지나쳐 버렸던 살아움직이는 것들이 내는 작은 소리들 마저 간절히 그리워지는 것이다. 작은 물방울 소리마저 부드러운 음악처럼 들린다. 건강한 기운과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전해주는 친구의 재잘거림처럼 들린다. 어느새 박자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되고 물방울이 모여 양동이를 가득 채우고 일렁이던 물이 마침내 흘러넘쳐 시냇물과 강물과 바닷물로 흘러드는 꿈을 꾸게 된다. 영원한 성장과 노력과 새로움의 기원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이제까지 설명되지 않고 혼란스러웠던 어떤 관계나 법칙이 갑자기 눈앞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잠 못 이루는 밤에 물소리를 듣다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감탄하고 베일에 가려진 삶의 마지막 진실에 경외심을 갖고 더 진지해지고 더 깊이 생각하며 인내심을 발휘한다.

이런 방식으로 모든 불면증 환자들은 이미 고난에서 미덕을 만들었다. 나는 그들 모두가 고통을 이겨내고 치유되길 기원한다.

가만히 창밖 소리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내는 모든 소리가 괜찮다, 괜찮다 위로를 건네는 것처럼 들립니다. 너는 지금 더 깊어지는 중이라고 누군가 알지 못하는 삶의 가르침을 이 불면의 밤으로부터 배우는 중이라고 격려해 주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밤에 잠들지 못하는 존재들이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고 낮을 위로할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밤의 이야기는 미처 생각지 못한 깊은 곳까지 데려다주고 매만져주죠. 어쩌면 고마운 선물인지도 모르겠어요. 기쁘게 소망해봅니다. 이 밤이 지나면 좀 더 관대하고 사려 깊은 내가 돼있길. 더 많이 감탄하고 더 자주 웃는 내일이 되길

이제 그만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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