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일 시선 18

희야 희야

1

項羽의 장탄식 같은
땅 꺼지는
바람의 깊은 한숨 같은
희야 희야
억수로 날리는
姬의 눈물
사쿠라 사쿠라

2

긴 긴 겨울 인고하여
가난가난 피워서
애지중지 봄시집 보냈더니
애 한 번 안 싸지르고
뭔 면목으로
넌 가느냐
가도
세월처럼 느릿느릿 갈 것이지
새파란 것이
할미꽃보다 지가 먼저
버릇 하나 없이
가도
봄바람처럼 오락가락
고민이나 좀 하다 갈 것이지
매정한 것이
뒤도 한 번 안 돌아보고
못난 것이
눈꽃보다 못난 것이

3

올 때부터 떠나려고 왔더냐
필 때부터 지려고 작심했더냐
애당초 오기 전부터
떠날 차비만 꼬박꼬박 하다가 왔더냐
참으로, 지는 것이
이쁘게 지는 것이
슬프게 지는 것이
그게 너의 소원이었더냐
희야 희야
못난 것아


책상과 걸상이 살았다

책상과 걸상이 살았다
임은 어디론가 떠나고
주인 없는 집에는 책상과 걸상이 살았다
임 엉덩이 온기가 그리워
걸상은 간혹 책상 밑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책상 위로 올라가 엎디어 보기도 하지만
그러나 온기는 없었다
임의 온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 나도 한 때는 나무였는데. 바람 부는 꿈나무였는데
-- 노망이야, 무슨 방정맞은 바람타령
간혹 들려오는 막대기와 막대기가 부딪는 마르고 딱딱한 대화
그러나 짝은 짝이로되 기물 대 기물로
가능한 서로간 예의와 본분을 지키며
책상과 걸상이 살았다
간혹 삐걱거리기도 하지만
서로 때리고 부수는 일 없이
서로 시선이 엉키는 일도 없이
책상과 걸상이 살았다
임이 떠난 집에
빈 집에
천생배필 책상과 걸상이
오래 오래 살았다


짝사랑

진동으로 설정된 핸드폰 하나
임이 모르는 어디에서
어쩌다 임 소식 접하면
혼자 소리 죽여 전율하는
스스로 내장한 64화음
걸려오는 전화 없어도 혼자 음악이 흐르고
심심하면 혼자 벨소리 쾅쾅 터트려
혼자 놀라 가슴에 손을 얹어 보는
임의 손에 따뜻이 쥐이고픈
임의 귓가에 한없이 속삭이고픈
핸드폰 하나
그러나 번호 없는 등록도 못 한
누구의
첫사랑
짝사랑


도심을 걷다가 고개를 들면
간혹 성내를 기웃거리는 산의 푸른 이마를 볼 수 있다

와서도 왔노라 기별도 않고
그저 멀찍이 성밖에 서서
산은 은근히 바라만 본다

무지 고지식한 친구여서
내가 주말에 안 가면, 못 간다고 기별하지 않으면
산은 저렇게 문득 찾아오군 한다

그리워도 그립다고 말도 없고
전화도 않고 편지 쓸 줄도 모르고
그저 저렇게 한 번씩
출근길에 문득 나타난다

-- 거시기, 아리랑하고 귀거래사
그거 한 번만 듣고 싶소

가사는 한 마디도 못 알아들으면서
그래도 내가 아리랑 부르면
저만큼 엎디어 사뭇 숙연하고
내가 귀거래사 읊조리면
웅얼웅얼 뭐라고 울림으로 답하는

산은
내가 이 도시에 살면서
유일하게 주말에 한번 씩 만나는 친구다


오늘은  마당에 예초(刈草) 가득해라

오늘은 앞뜰 뒤뜰 욕심같은 억새풀 베어내고
이제 국화 씨 드문 드문 좀 뿌려야지

저 억새들이 굴뚝같이 자라 내 마당을 메우는 동안
꽃들은 숨을 쉴 수가 없었지

이제 녹슨 양낫 망치로 퍼렇게 두드려
저 서슬 퍼런 것들을 쓰러뜨려야지

푸른 꼴이나 한 마차 해야지
덕분에 올 여름 우리집 황소 힘 좀 쓰겠네

이젠 가을도 선들선들 올 것이니
마음 좀 비워 한가위 달 맞을 준비도 해야지

오늘은 내 마당에 예초향(刈草香)이 진동해라
풋풋한 사내 바람난 냄새 같아라

욕심을 베는 냄새가 이렇게 쿨해서는
가슴 큰 옆집 여자 반하기라도 하겠네

 

나무야, 기다릴 애인은 있느냐

나무야
너는 가진 것이 무엇이며
갈 곳이 어디며
기다릴 애인은 있느냐
미안하다
봄이 오고 오늘 처음 너를 보러 왔구나
저고리가 곱구나
새각시같구나
옷고름이 단정하구나
어느 시인 점잔은 싯귀같기도 하구나
햇빛에 머리 헹구는 네 목이 순하구나
바람에 머리 빗는 네 팔이 무희같구나
내가 온 것이 그리 좋으냐
날 만난 것이 그리도 신나냐
그래 그래
나보다 봄바람이 좋아서겠지
봄바람이 나서 자꾸 배실배실 웃는 거겠지
말쑥하니 키가 큰 것이
허리가 날씬한 것이
마음씨 하나 무엇보다 고와보이는 것이
…아직
시집도 못 간 것이
-- 바보예요? 내가 시집을 왜 가요?!
그래 그래 내가 바보지
이 좋은 봄 놔두고 어디로 시집 갈 것이며
이 좋은 아저씨 버리고 어디로……

 

하늘을 보아라

하늘을 보아라
두루미처럼 날지는 못해도
두루미처럼 목을 빼들고
파랗게 보아라
구름 한 조각 없어도
니 맘이 비지 않으면
하늘은 비지 않거니
하다못해 빛으로 충만하고 바람으로 충만하고
하다못해 공허로 충만하고 그리움으로 충만하고
그래도 허무하면
그러면 들로 나가라
지 손가락으로 땅을 파 보아라
묻혀있는 것들
오로지 씨앗 하나 더 가진 것 뭐가 있어
가슴이 그렇게 벅차고 터지려 하느냐고
한번 물어보아라
바람에 날린 풀씨 하나 스스로 움이 터 하늘을 우러르듯
하늘을 보아라, 문둥아
저 하늘 너무 파래
가슴이 떨리지 않느냐
아무 것도 없어도
아무 것도 없어도
하늘을 보아라
한 껏 긴 목
한 껏 젖히고
암두루미 수두루미 바람 속에 전희하듯
끼륵 끼륵 하늘을 보아라

 

야생화 스케치

1

신기하게
씨앗 하나 안 흘리고도
내 밭에 버젓이 피는 꽃이여
스치는 바람에도 잉태하는 것은
니가 아니고
나인걸

2

들꽃
피어라
아내 고운 남우네집 앞 마당에 피어라
보란 듯이 피어라
피어 이뻐라
이뻐 여우같아라
남우는 멍청하니까 그만 두고
남우 여자 마음만
한 줌 훔쳐가거라

3

바자 엮어 세우면 나팔꽃으로 피고
담 둘러 막으면 담쟁이 덩굴로 넘어오는
여우같은 님아
내가 이제 늑대가 되면
널 쫓아버릴 수 있겠느냐

4

니가 내 꽃이 아닌 것보다
니가 지는 것이
나는 더 아픈데
한 번 환하게 피지도 못하고 가는 님아
가면서 소리 내어 뻐국뻐꾹 울어나 다오

5

이제는 내 꽃 아니어
나는 니가 슬픈데
이팔청춘 안 피는 거 천벌 맞을 짓임을
니가 알기나 할가만은
남의 남자 가슴에라도
이 봄 잠깐
이쁘게 피었다 가거라

6

-- 그이가
앞 산 너머 까치역까지 왔대유

지나가던 바람이 그랬나
기별이라도 왔나

조용하던 마당
갑자기 새들이 왁작 부산하고
휙 사립문 열리고
강아지가 뛰쳐나가고

7

사람은 가고
향기만 남아
빈 마당
꿀벌 나는 소리 귀가 먹먹해라

 

꽃도 아니면서 밭에 만발한 이여 

내 꽃도 아니면서 내 밭에 만발한 이여
호미 버리고 집으로 도망오면
마당에 와 피고
문 걸고 안 나오면
창밑에 와 피고
하루 하루 닫힌 창으로
아슬아슬 이마며 눈썹을 내미는
내가 시베리아로 망명이라도 하면
툰드라까지 쫓아와 내 마음에 필 것도 같은
꽃이여
이제 나 야반도주 안 할 거니
굳이 추노할 것도 없이
내 땅 내 밭 내 집 이제 니가 피어
다 니 땅 니 밭 니 집이니
니가 마님이고 니가 주인이고
나는 이제 벌거숭이 머슴이거니
여우같이 이쁜 이여
기왕 필 것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라
내 마음에 피가 낭자하도록 피어라

 

우기(雨期)

그리운 사람 있어
창밖엔 비가 오고
비 내리는 소리 님 오는 기척 같아
그리움은 외투만 걸치고 문을 나서는데
하늘 끝에서 문 앞까지 어디를 돌아봐도
산에 들에 거리에 님은 없고 님은 또 있는데
비옷도 없이 우산도 없이 맨머리로 나무들
묵묵히 나처럼 비를 맞네 비에 젖네
옷이 젖어도 옷을 벗어도 기댈 가슴 없는데
무슨 심뽀인지 비는 그칠 줄 모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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