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화되는 세계 질서와 한국의 안보 위기

최근 들려오는 여러 소식들을 접하다 보면 트럼프, 나아가 극우 지식인들의 주장을 믿은 대가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암담하다. 여러 자료들을 종합해보면 현재 중∙러 군사협력체의 형성으로 인해 “세계섬” 지역에서 미국의 지정학적∙군사적 열세는 기정사실이라 봐도 무방할 듯하다.

일례로 2021년 4월 초, 우크라이나 동부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공세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자 미군은 흑해에 군함 2척을 파견하려 했으나, 갑자기 이를 취소하고 말았다(4월 15일). 해당 사건 관련 국내 언론보도를 보면 대러 수위조절이라는 평론이 유행했지만, 실제 이유는 언론 보도보다 더 복잡한 것으로 보인다.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트럼프의 대 터키 제재로 인해 국가 경제가 몰락한 에르도안 정부는 미군 함정이 자국 영해인 보스포루스 해협을 경유함으로써 흑해 일대의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하는 것을 반대했고, 이로 인해 미군도 결국 흑핸 진입 작전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터키의 대외 행보에 대한 불만 표출인지 바이든 행정부는 4월 25일 처음으로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을 인정했다.

미국의 흑해, 동지중해 일대에서의 영향력 회복 시도가 좌절된 사건은 비단 보스포루스 해협 진입 실패 사건뿐만 아니다. 5월 14일, 이라크 주둔 미군은 시리아 진출을 시도했지만 러시아 주둔군의 제지를 받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재미있는 사실은 이와 관련된 국내 언론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 이와 함께 중국 학계에서는 미국과 나토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인해 내륙 지대에서 자국을 위협할 세력이 사라지자, 슬슬 타이완 정복 등을 포함한 서태평양 진출을 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처럼 미국이 유일 패권국으로 존재하던 세계질서는 ①중국, 러시아, 이란을 위시한 중∙러 군사협력체(중국-러시아-이란)와 ②미국을 위시한 대서양 동맹체제와 서태평양 군사동맹체제로 이원화되고 있다. 실로 중국과 이란 25년 협정이 체결될 당시 이란 외무부장관이 말한 “새로운 세계질서”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정부의 대북∙대중 정보능력은 최악의 상황이라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경봉쇄, 그리고 2020년에 진행된 중국의 방첩 작전 등 외부변수로 인해 한국 정보부처 요원들의 신상이 거의 다 공개되어 버렸고, 이 때문에 과거 중국 둥베이 지역에서 북∙중 국경을 왕래하는 상인, 노동자를 통해 이루어지던 대북 공작은 거의 중단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북한과의 평화 국면 조성을 통해 정권 재창출을 이루려는 현 정부는 ①백신여권 등을 통한 한∙중 양국의 국경 봉쇄 완화와 ②민간단체 차원의 인적 왕래 내지는 학술 교류를 통해 북한과의 접촉을 시도하겠지만, 중국 측에서 한국의 코로나 상황을 빌미로 거부할 것이다. 아마도 우리 정부는 북한과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 중국에 적대적 감정이 없음을 꾸준히 강조하겠지만, 막후 상황을 모르는 대다수 국민들은 이 정부의 친중 행보를 비난하며, 민주당 집권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할 가능성이 높다.

차후 정부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수세에 몰린 상황을 덮고자 언론에 우리 정부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뉘앙스의 기사 내용을 언론에 흘릴 것이며, 이런 잘못된 기사로 인해 대다수 국민들은 ①미∙중 충돌로 인해 우리가 양측의 구애를 받고 있는 상황이며 ②중국과 러시아는 고립되는 중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중국과 러시아의 “고립”보다는 “이탈”이 더 정확한 표현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현재 다양한 정보를 종합해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솔레이마니 암살로 인해 세계는 점차 ①중∙러 군사협력체 중심의 “세계섬” 지역과 ②미국 중심의 대서양 동맹체제로 이원화되는 과정에 놓여있고, 이로 인해 중러 군사협력체의 영향권에 놓인 나라들은 정치적 부담이 큰 미국, EU와의 정치∙경제 협력보다는 미∙중∙러 3개국과의 관계가 모두 불편하지 않은 한국과의 관계를 점차 선호하고 있다. 이는 분명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로 다가오는 중이지만, 동시에 ①미국과 보수 언론은 계속해서 우리 정부로 하여금 친미 노선을 분명히 하라며 압박하는 중이며, ②중국은 사드 사태 이후 한국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양자 택일은 우리에게 분명 어려운 일이다. 중∙러 군사협력체와의 관계 악화는 결과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중국,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중동 시장에서 전면적 철수를 해야 함을 뜻하며, 미국과의 관계 악화는 미국 중심의 대서양 경제체제에서 (중∙러와 같이) 이탈해야 함을 뜻한다.

이와 같은 국제질서의 변화 때문인지 현 정부의 모호한 외교정책은 계속되고 있다. 현 정부는 친중 성향이 강한 미얀마 군부 대신 반군 세력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중국과 함께 스리랑카에 5억 달러 상당의 차관을 제공한 바 있다. 이와 같은 갈지자 행보의 이면에는 현 정부가 사실상 이와 같은 국제질서의 변화를 인지하고, 최대한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적어도 극우 지식인들과 보수 언론 기자들보다는 그래도 세계 질서가 변화하는 흐름을 잘 읽어내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보수 언론의 친미 성향은 결국 우리나라를 극우 노선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는 중앙아시아, 나아가 인도차이나 시장의 상실과 중∙러 군사협력체와의 전면적인 군사적 충돌을 뜻하며, 우리는 이들과 맞서 싸울 군사적 역량이 없다. 더군다나 최근 ICBM 분야에서 중∙러의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미국조차 개발에 실패한 ARRW 무기화에 성공한 상황인지라 미국의 군사적 우위도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이런 국제 질서 변화 속에서 우리의 대북 인적정보망은 붕괴된 상황이고, 현재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객관적으로 생각해 봐도) 아무것도 없다.

이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도 한동안 모호한 스탠스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미일 서태평양 동맹체제에서 인적정보망을 담당하던 나라가 바로 한국인데, 현재 코로나19와 중국의 방첩작전으로 우리 정부의 대인정보망도 무너진 상황이며,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조차 북한의 의중을 알기 쉽지 않을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평론가들이 한결같이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와는 달리 대북 정책에서 우리 정부의 고유 역할을 인정해준다는 식으로 평론하던데, 이는 한국의 역할을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대중 인적정보망도 붕괴된 상황이다 보니 우리 측에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북한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미 행정부조차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상황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그나마 기존의 인적자원망과의 교류를 통해 몇몇 사안을 확인하는 수준이겠지 이 이상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미∙중 양국의 충돌은 격화되어가는 중이고, 중국정부는 우리가 양국 사이에서 중립을 지킬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 우리 정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을 것이다.

최근 바이든 정부에서 중국과의 군사 핫라인 개설을 요구한 것 또한 여러모로 재미있다(이 또한 국내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미국도 대중 인적정보망이 붕괴했을 가능성이 높은지라 이제 중국 군부와의 정상적인 교류가 아닌 이상, 중국 측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고, 타이완 해협에서의 충돌이 전면전으로 번질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도 보여주는 조치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후, 중앙아시아에서 더 이상 자국을 위협할 세력이 없음을 확인한 중국이 타이완 진출을 시도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으며, 이를 위해 중국은 한 동안 중앙아시아와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의 대중국 비판을 피하고자, 이슬람 친화적인 정책을 실행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최근 중국 통일전선부 부장, 부부장급 인사가 교체됐는데, 이들의 성향으로 볼 때 앞으로 중국은 ①위구르 문제와 이슬람을 별개의 문제로 인식하게 만드는데 힘쓰고(이슬람 국가에서도 종족 분쟁으로 인한 소수민족 탄압은 존재하기에) ②나아가 무슬림 출신 친중 성향 소수민족(ex. 회족) 관료들을 대거 발탁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여러 변화가 일어나는 가운데 일부 언론의 정치적 편향성은 실체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장애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우리 언론의 정보 소스가 대체로 영미권 언론이다 보니 영미권에 유리한 기사만 보도되는 중이고(불리한 기사를 내보내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찾기 어렵다), 중국 언론은 몇 년 전부터 자국에 유리한 기사만을 써서 보도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가짜 뉴스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통찰력 있는 판단을 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다만 이런 홍수 속에서도 일정한 흐름을 찾아볼 수 있는데 아래와 같다.

①중국은 EU와의 경제협력에서 난관에 부딪치고 있으며, 중국 정부의 대외 강경책은 역설적이게도 중국의 물가 상승과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견디지 못하는 기업들의 생산 중단을 초래하고 있다. 최근 중국 PPI 지수 상승으로 보아 올해 중국 정부에서 예상하는 수준의 경제 성장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미국은 기존 유럽 제국諸國과의 동맹 관계를 회복하고 대중, 대러 강경책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경제 성장이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할 것임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월가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에 대한 미 행정부 정부의 고강도 조사는 중국 기업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②그렇다고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압도적인 우세를 자랑하는 상황도 아니다. 오히려 미국은 미얀마 사태와 보스포루스 해협 진입 실패, 시리아 진군 실패 등 “세계섬”에서의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에 부딪쳐 계속 실패하고 있다(심지어 군사 기술 분야에서 미국은 몇몇 분야에서 중∙러의 추월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감행함으로써 중∙러 군사협력체는 탈레반과 함께 “심장지대”에서 자신들을 위협하던 최후의 군사적 실체를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만일 중∙러 군사협력체와 미국의 충돌 국면이 지속된다면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 있는 “세계섬” 국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블록을 만들 수도 있다.

③이란, 시리아의 중∙러 군사협력체 참여는 기정사실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탈레반도 큰 변수로 작용한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터키 또한 에르도안이 집권하는 한, 미국에 반하는 행동에 참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이런 이슬람 국가들의 비판을 의식해서인지는 몰라도 최근 중국정부의 종교정책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어쩌면 새뮤얼 헌팅턴 교수가 《문명의 충돌》에서 예언한 바와 같이 서구권에 대항하기 위해 중화문명과 이슬람문명이 연대하는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현재 상황을 놓고 보면 미국 중심의 대서양 동맹체제와 중∙러 군사협력체 간의 힘의 균형이 이루어진 상황인지라 누가 유리하고 불리한지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나는 20-30년 뒤에 양자 사이에 타협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중∙러 군사협력체의 영향권이 너무도 광활할 뿐만 아니라(시리아 라타키아에서 북한 원산에 이르는 “세계섬” 지역), 이들 모두 서구 중심의 세계질서에 반대한다는 강력한 정치적 목적성을 공유하다 보니 이들의 연대가 깨지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서구권 입장에서 보면 이들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점거한 상황도 아니고, 이들이 없어진 세계는 아메리카 대륙과 EU, 호주, 한국과 일본, 몇몇 아프리카 국가뿐인데, 이들의 이탈이 현실화되면 대서양 동맹체제 중심의 경제권 규모 또한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중∙러 군사협력체도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내부 비판을 잠재우는데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으며, 기술 분야에서의 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는 장벽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결국 양자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타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달리 말해 우리나라는 미국 중심의 대서양 동맹체제와 중∙러 군사협력체 간의 대타협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하며, 개별 사안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버텨야 한다. 이는 결단코 쉬운 길이 아니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양쪽 시장 모두 잃을 수 없으며, 미국의 영향력을 실제 이상으로 평가하고, 중∙러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극우 평론가들의 주장을 거부해야 한다. 하지만 2차원적인 국제관계만을 배운 국내 전문가들이 지금과 같은 전혀 다른 세계질서의 형성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며, 이들은 전문가 행세를 하며 언론과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자신들의 극우 사상을 전파할 것이다. 편향된 정보만을 공급받는 자들은 당연히 편향된 정보를 토대로 (후세 사가가 보기에) 기형적인 오판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같은 편향된 정보의 공급으로 만들어진 기형적인 여론은 한국의 몰락을 불러오는 단초가 될 것이다.

2021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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